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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스미기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by 빗방울이네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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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님의 시 '너를 위하여'를 만납니다. 사랑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읽기

 
너를 위하여
 
- 김남조(1927~2023, 경북 대구)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를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 「한국대표시인선집 - 김남조」(김남조 지음, 문학사상사, 2002년) 중에서

 

2. '내 사람'에 대한 간절한 사랑

 
'너를 위하여'는 1953년 발간된 김남조 시인님의 첫 시집 「목숨」에 수록된 시입니다. 시인님의 20대에 쓰인 시네요.
 
'내 사람'을 향한 간절한 사랑을 노래한 시입니다. 저마다의 '내 사람'을 떠올리면서 시 속으로 들어갑니다.
 
나의 밤 기도는 / 길고 /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그대도 이런 기도를 올린 적이 있겠지요?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올리는 기도입니다.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시의 제목이 '너를 위하여'이니, 그 기도는 '너'를 위한 기도입니다.
 
'한 가지 말'. 저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저 사람 속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저 사람을 저에게 허락하소서,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는 오로지 저 사람이면 됩니다. 이런 한 가지 문장으로 채워진 기도입니다.
 
가만히 눈뜨는 건 / 믿을 수 없을 만치의 /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 내 사람아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온통 '너'로 가득 차 있는 '나'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새벽에 '가만히 눈뜨는 건' 얼마나 달콤한 행복인지요. 눈을 뜨면 내 속에 가득 찬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은 참으로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이라고 합니다.  
 
'갓 피어난 빛'. 오래 묵은 빛이 아니라 '갓 피어난 빛'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너'는 그렇게 새롭고 부드럽고 밝고 맑은 이라는 말이겠습니다. 그런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 그런 사람이 바로 '너'라고 합니다. 얼마나 소중한 이일지요.
 
'내 사람아'. 이 뜨겁고 과감한 호명에 이르기까지 '나'는 얼마나 '너'의 주변을 맴돌고 또 맴돌았겠는지요. 시인님의 또 다른 시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 김남조 시 '편지' 중에서

 
이런 사람이기에 '나'는 '너'에게 '내 사람아'라고 뜨겁고 과감하게 호명할 수 있겠지요.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3.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쓸쓸히 / 검은 머리를 풀고 누워도 / 이적지 못 가져 본 / 너그러운 사랑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이적지'. '이제껏'이라는 뜻인데, 대구 출신인 시인님의 고향말이네요. 어릴 때부터 몸속에 박혀있는 '이적지'라는 단어처럼, 처음부터 몸속에 내재된 순수한 '사랑'의 본성으로, 아무 가식이나 욕심 없이 '너'를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 잊어버리고 /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 나의 사람아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이 구절이 절절하네요. 이 시의 가장 높은 곳, 우듬지입니다. 사랑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네요. 내가 준 사랑을 확인하고, 준만큼 받으려는 사랑이 아니라 '소중한 건 무엇이나' 주는 사랑입니다.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너'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바로 '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너'이기에 '나'는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을 하리라고 다짐합니다.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는 사랑,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는 사랑, 이런 사랑은 얼마나 높은 사랑인지요. 맑고 깊은 샘물 같은 사랑인지요. 
 
눈이 내리는 / 먼 하늘에 /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 기쁨이 있단다 / 나의 사람아

- 김남조 시 '너를 위하여' 중에서

 
'달무리'는 달빛이 구름을 통과하면서 생긴 굴절현상입니다.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달무리 한 지 사흘이면 비가 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눈이 내리는' 밤일지라도, 비가 오는 밤일지라도 그 눈과 비 너머 '먼 하늘'에는 달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을 아무리 깜깜한 밤일지라도 '너'는 존재한다는 '나'의 깊은 자각으로 새겨봅니다.
 
아무리 험난한 시간일지라도 '너'는 '나'에게 존재하니 '나'는 얼마나 든든한지요. 그런 '너'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세상 모든 것의 존재 이유라고 하네요. 참으로 이 절절한 사랑을 어찌할까요?
 
평생 1천여 편의 시를 썼고, 인간과 삶, 생명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던 시인님의 사랑에 대한 문장을 읽으며 ‘나의 사람’에 대해 곰곰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일은 거기 사랑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공허하다'라든가
'진정한 사랑은 생명을 주기 전에 사랑하는 자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든가 하는
보편적인 말에서도 쉽사리 감전을 느끼면서
시린 두 손을 그 어휘들 앞에 쪼이곤 합니다.

- 「오늘의 시인총서 - 김남조 시 99선」(김남조 지음, 도서출판 선, 2002년)에 실린 김남조 시인의 산문 '시에 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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