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 봄은
신동엽 시인님의 시 '봄은'을 만납니다.
진정한 봄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신동엽 시 '봄은' 읽기
봄은
신동엽(1930~1969, 충남 부여)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눈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신동엽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창비, 2017년) 중에서.
2. 봄은 남쪽에서 올까요?
시 '봄은' 1968년 한국일보에 발표된 시입니다.
신동엽 시인님 38세 즈음의 시네요.
시인님은 참여시의 절정이자 기념비적인 저항시로 꼽히는 시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그런 시인님의 시 '봄은' 어떤 시일까요?
'봄은 /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
그럼 봄은 어디서 온다는 말일까요?
이 시에 등장한 '봄'에 특별한 상징이 있는 것 같네요. 바로 '민족 통일'이 그것입니다.
1968년의 시입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분단,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친 한반도는 남북 간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남북 화해와 통일, 그것이 바로 시인님이 기다리는 봄입니다.
'봄은 /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시인님은 이 구절에서 봄은 '남해'와 '북녘', 즉 우리의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네요.
외부의 힘이 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럼 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너그럽고 / 빛나는 /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 우리가 디딘 / 아름다운 눈밭에서 움튼다.'
봄은 '남해'와 '북녘'으로 상징되는 외부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디딘' 곳에서 '움튼다'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 봄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온다고 합니다.
봄은 어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디딘' 데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겨울은, / 바다와 대륙 밖에서 /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 우리들 가슴속에서 / 움트리라.'
'봄'의 상징이 남북 화해와 통일이었으니, '겨울'도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민족 대립과 분단의 시간입니다.
그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왔다고 합니다.
민족 분단이라는 겨울은 외세에 의해서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과 소련 사이 대립의 결과가 민족 분단이었습니다.
그 겨울은 우리 민족에게 '매운 눈보라'라는 고통을 몰고 왔습니다.
'이제 올 /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터야만 하리라'로 읽히네요.
우리의 봄이 '남해'와 '북녘'이라는 밖으로부터 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움터서, /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 눈 녹이듯 흐물흐물 / 녹여버리겠지.'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은 무엇을 말할까요?
치열해지는 이념 대립과 좌우 분열, 증오와 불신, 남북 간의 긴장과 대립을 말할 것입니다.
봄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봄은 '너그러운 봄'이네요.
'우리들 가슴속에서' 그 '너그러운 봄'이 움튼다면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을 녹여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신동엽 시인님의 시 '봄은'은 이렇게 자주적 평화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는 시였네요.
1968년의 시이니 지금(2025년)으로부터 57년 전의 시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이 시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네요.
3. 정말 봄은 어디서 올까요?
신동엽 시인님의 시 '봄은'을 읽으면서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南)으로 오네
- 김동환 시 '산 너머 남촌에는' 중에서.
이 시 '산 너머 남촌에는'은 일제치하였던 1927년 발표된 시입니다.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로 음미할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봄바람이 남으로' 온다고 합니다. 봄이 남쪽에서부터 온다고요.
신동엽 시인님의 시 '봄은'과는 봄이 오는 곳이 다르네요.
'봄은 /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
'우리가 디딘 / 아름다운 눈밭에서 움튼다.'
- 신동엽 시 '봄은' 중에서.
신동엽 시인님은 봄은 남해나 북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디딘 땅에서 움튼다고 합니다.
두 시를 나란히 놓고 보니 그 봄의 맛이 다릅니다.
신동엽 시인님은 자주적으로 일궈내는 봄이고, 김동환 시인님은 기다리는 봄, 필연적으로 오게 되는 봄입니다.
물론 두 시가 지닌 특성이나 매력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시를 비교하면서 골똘히 생각해 볼 만한 한 가지는 생기네요.
정말 이 봄이 어디서 오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우리는 봄이 어디에선가 온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실상 그 봄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요?
또한 내 마음의 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갈등과 미움과 분노에 찬 겨울 같은 마음에 행복이 약동하는 따뜻한 봄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 마음의 봄 역시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신동엽 시인님의 시 '봄은'을 읽다가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대는 봄을 기다리는 쪽인가요, 아니면 봄이 되는 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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