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스미기

정호승 시 들녘 해설 감상하기

빗방울이네 2025. 6.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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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님의 시 '들녘'을 만납니다.
 
7줄의 이 짧은 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함께 시를 읽으며 생각하며 마음을 씻어 보십시다.
 

1. 정호승 시 '들녘' 읽기

 
들녘
 
정호승(1950년~ , 경남 하동 출생 대구 성장)
 
날이 밝자 아버지가 
모내기를 하고 있다
아침부터 먹왕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다
비온 뒤 들녘 끝에
두 분 다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정호승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김영사, 2021년) 중에서.
 

2. '두 분 다 참으로 부지런하시다'에 담긴 뜻은?

 
시 '들녘'을 읽고 나니, 마음속의 기타 6번 줄이 '디잉~' 하고 굵고 낮게 울리는 것만 같습니다.
 
어느 구절에서 기타 줄이 울렸을까요?
 
시를 다시 음미해 봅니다.
 
'날이 밝자 아버지가 / 모내기를 하고 있다
아침부터 먹왕거미가 / 거미줄을 치고 있다
비온 뒤 들녘 끝에 / 두 분 다 /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날이 환하게 밝은 시간, 아침의 '들녘' 풍경이네요.
 
시 속의 계절은 논에 벼를 심느라 한창 바쁜 모내기철, 여름이네요.
 
여름은 여름인데 '비온 뒤'의 여름날입니다.
 
'적우(適雨)'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알맞은 시기에 딱 내리는 비 말입니다.
 
모내기철에 맞추어 비가 내려주었으니 참 좋았겠습니다. 
 
논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어야 벼 모종을 심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비온 뒤' 아버지는 날이 밝자마자 들녘에 달려가 바삐 모내기를 했겠습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릴 아버지의 한 해 농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먹왕거미'라는 단어에서 어쩐지 과묵함이 느껴지네요. 시커멓고 큰 몸집 말입니다.
 
그는 아침부터 왜 거미줄을 치고 있을까요?
 
맞습니다. '비 온 뒤'니까요. 지난밤 비바람에 훼손된 거미줄을 급히 수선해야겠습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거미줄을 수선해 지나가는 길손을 '초대'해야 하니까요.
 
시인님은 이렇게 두 가지 풍경을 우리에게 무심히 보여주시네요.
 
이 풍경은 뭐랄까요, 저마다 스스로의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풍경이랄까요?
 
그래놓고는 시인님은 이런 감상을 말씀하시네요.
 
'두 분 다 /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바로 이 구절에서 우리네 마음의 기타 6번 줄이 '디잉~' 하고 울립니다.
 
'아버지'는 당연하겠지만 '먹왕거미'까지 합쳐 '두 분'이라고 말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버지'와 '먹왕거미'를 '부지런하시다'라고 공경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이 두 행으로 인해 시 '들녘'은 우리를 저 높고 푸른 여름의 하늘로 들어 올려주네요.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시인님의 마음으로 들어가 버리나 봅니다.
 
'두 분 다 /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세상만물을 차별 없이 하나로 보는 이 구절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공손해지는지!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모내기와 먹왕거미의 거미줄 치기라는 행위를 천천히 떠올리며 우리는 얼마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경하게 되는지!
 
이리하여 '디잉~'하고 울리는 우리네 마음의 기타 6번 줄의 여음 속에서 얼마나 낮아지고 겸손해지는지!
 
이 순박할 것만 같은 '먹왕거미'를 만나면 이제는 '안녕' 하고 인사해야겠습니다.
 
어디 '먹왕거미'뿐이겠는지요?
 
그동안 '나'는 얼마나 '자연/타자'를 분리하고 차별하고 소유하고 군림하며 살아왔는지!
 
'두 분 다 /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소중한 삶이 있다는 것을, 그들의 목숨에도 하나의 우주가 들었다는 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묻고만 싶습니다.
 
시인님! 어떻게 하면 우리도 시인님처럼 낮고도 높은 시선을 가질 수 있는지요?
 
이 생애에 받아 든 이 '들녘'에서의 막막한 삶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요? 
 

"아버지··· 먹왕거미··· 두 분 다 참으로 부지런하시다" - 정호승 시 '들녘' 중에서.

 

3. '모두가 연기하는 한생명'이라는 말에 대하여

 
이 커다란 질문의 답이 되어줄 팁의 뒷모습이라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다른 시를 살펴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시 '들녘'이 실린 정호승 시인님의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실린 시들입니다.
 
내가 뿌리를 내린 절벽 위에 / 노란 애기똥풀들이 서로 마주 앉아 웃으며 똥을 누고 있다
나도 그 옆에 가 똥을 누며 웃음을 나눈다
- 정호승 시 '상처는 스승이다' 중에서.
 
참, 시인님도. 애기똥풀 옆에 가 똥을 누며 용을 쓰는 시인님의 표정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네요.
 
시인님은 우리에게 애기똥풀 옆에 가서 애기똥풀과 웃음을 나누며 똥을 눈 적이 있는지, 아니 똥을 눌 수 있는지 묻고 있네요.
 
애기똥풀 곁에 가 똥을 누는 마음, 그렇게 똥을 누는 풍경을 가진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온몸이 토막토막 난 채로 / 산낙지가 있는 힘을 다해 꿈틀대는 것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 바다의 어머니를 보려는 것이다
- 정호승 시 '산낙지를 위하여' 중에서.
 
이 시는 '이제는 참기름에 무친 산낙지는 먹지 말자'라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산낙지를 먹더라도 그렇게 '온몸이 토막토막난 채로' '있는 힘을 다해 꿈틀대는 산낙지'를 먹지 말자고 합니다.
 
접시 위에서 꿈틀대고 있는 산낙지 몸조각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좁혀진 미간으로 시를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왕거미 한 마리 / 내 눈물을 갉아먹으려고 황급히 다가오다가
아침 햇살에 손을 모으고 / 고요히 기도하고 있었다
- 정호승 시 '거미' 중에서.
 
아침 나뭇가지에 맺혀 있는 '이슬'을 보고 시인님은 생각합니다.
 
'내가 평생 흘린 모든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라고요.
 
슬픔이 응고된, 그리하여 그 깊고 깊은 슬픔을 씻어주는 눈물은 얼마나 이슬처럼 맑고 영롱한지요?
 
그 이슬이 한 사람이 '평생 흘린 모든 눈물'이라는 것을 왕거미가 알게 되었을 거라고 짐작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모두가 함께 연기(緣起)하는 한생명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에 수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별개의 인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이중표 역해, 민족사, 2017년 초판 2쇄) 중에서.
 
이 온 우주가 '한생명'이라고 합니다.
 
나와 타자/세계가 분별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한생명'이라고요.
 
나는 타자/세계의 원인이기도 하고 타자/세계의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타자/세계는 나의 원인이기도,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문장은 나만 무사하고 잘 되면 된다는 생각, 타자/세계는 나와 상관없다는 아만(我慢)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연기하는 법계를 자신의 몸'으로 삼아 살아가라는 말이겠습니다.
 
'비 온 뒤' 들녘에서 간밤의 비바람에 훼손된 거미줄을 바삐 수리 중인 '먹왕거미'를 생각합니다.
 
절벽의 애기똥풀들, 접시 위의 산낙지, 이슬 앞에 손을 모은 왕거미를 생각합니다.
 
이 모두가 '나'와 연기(緣起)하는, 또한 서로서로 연기하는 '한생명'이겠습니다.
 
시인님, 시 '들녘'에서 이렇게 멋진 '먹왕거미'를 만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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