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님의 시 '폭포'를 만납니다.
폭포의 속성을 떠올리며 우리 정신의 지향점을 생각하게 되는 시입니다.
함께 읽으며 마음을 맑히는 독서목욕을 하십시다.
1. 김수영 시 '폭포' 읽기
폭포
김수영(1921~1968년, 서울)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년 춘조사 발행본을 민음사가 2018년 재발행한 리뉴얼 에디션) 중에서.
2. 우리에게 '폭포'의 정신을 묻는 시
김수영 시인님의 시 '폭포'는 1957년 9인 시집 「평화에의 증언」에 처음 발표된 시입니다.
시 '폭포'는 시 '풀'과 함께 시인님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시인님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나온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의 초판본에 시 '폭포'는 세로 쓰기로 되어 있네요.
그래서 시 '폭포'의 15개 시행들이 위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는 시어들을 단숨에 읽고 나니 호흡이 가빠지고 사방에 폭포소리가 가득해 정신이 혼미할 지경입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폭포의 속성을 노래한 이 시에서 우리는 저절로 폭포 같은 정신을 떠올리게 되는 시입니다.
현실을 향한 날카롭고 올곧은 정신, 주저 없이 참여하고 치열하게 실천하는 정신을 생각하게 되는 시입니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곧은 절벽'은 떨어지기 무서운 곳입니다.
그러나 폭포는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라고 합니다.
떨어질 곳이니 마땅히 떨어져야 한다는 듯이 말입니다.
'곧은 절벽' 같은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는가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폭포처럼 두려움 없이 망설임 없이 말입니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폭포'를 '고매한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폭포'와 '고매한 정신'의 공통점은 무얼까요?
이 둘의 힘은 자유롭고 거침이 없습니다.
이 둘의 태도는 불의에 맞서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 둘의 방향은 부정에 타협하거나 굴종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금잔화'는 아름다움의 대표선수네요.
'인가'는 사람이 사는 집입니다.
그런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은 어떤 밤일까요?
아름다움이 사라진 시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어두운 시간입니다.
그 어두운 시간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라고 합니다.
주위가 조용한 밤에는 폭포소리는 더 또렷이 들리겠지요?
그 소리는 온 천지를 울리는 '곧은 소리'입니다.
굴욕과 억압의 현실에 저항하고 이를 물리치는 정의로운 소리, 희망의 소리입니다.
3. '곧은 소리'를 내라고 말하는 시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이 4연에서는 '소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글이나 그림이 아니라 '소리'를 강조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소리'는 사람이 직접 자신의 목청으로 내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 들리도록 지르는 것입니다.
'곧은 소리는 곧은 / 소리를 부른다'
폭포의 '곧은 소리'는 나의 '곧은 소리'를 부르고, 나의 '곧은 소리'는 그대의 '곧은 소리'를 부릅니다.
나와 그대의 '곧은 소리'는 우리의 '곧은 소리'가 됩니다.
현실의 부조리와 억압을 참지 못하고 광장에 운집한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 같은 구절입니다.
불의를 향해 내지르는 사람들의 '곧은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구절입니다.
시인님은 그런 '곧은 소리'가 모여야 정의의 역사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구절입니다.
우리에게 '곧은 소리'를 지르라고 요청하는 것만 같은 구절입니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 높이도 폭도 없이 / 떨어진다'
폭포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행간의 갈피 속에 우리 정신의 지향점을 넣어두었네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것저것 재고 주저하면서 시간을 끌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누가 나를 자기 마음대로 취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나타(懶惰: 느리고 게으름)와 안정, 무사안일에 잠시라도 안주하지 않고 변화와 전진을 지향합니다.
높이나 폭이라고 규정된 한계를 뛰어넘으며 무한한 가능성의 자유에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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